마흔을 맞이하며

누군가 그랬다. 마흔을 맞으며 기쁘고 설렜지만, 마흔넷이 되며 불안해졌다고. 통계적으로 인생의 절반이상을 산 셈인데, 이대로 사는 것이 잘 산다고 한것인지가 불안하다고 했다.
내나이, 이틀후면 만으로 마흔이 된다. 그누구의 말처럼 나도 기쁘고 설렌다. 인생을 한가운데 왔다고 할까. 지난 15-6년간 일하고, 분수에 맞지않는 공부하고, 앞으로 더길게 -2-30년은 일을 하겠지. 난 연구하고 글쓰는게 좋으니까, 아마 죽을때까지 가르치거나 글쓰는 일을 하고 있을것 같다. 마흔이 되어 새로 갖고싶은 능력도 생겼다. 데이타 비주얼을 잘하고 싶다. 데이타를 이해하기 쉬운 비주얼로 보여주는것. 이미 많은 국제기구, 정부, 연구기관, 신문사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학과 출신이지만 수자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이 있는거 같다.
호주에 도착한지 3주만에 한인신문에서 인터뷰를 하러왔다. 한국식 질문부터 시작했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한인모임에 나갈때마다 하는 것이다. 출생지, 출생년도, 학번, 최종학력, 가족사항 순서다. 불편했다, 이런 것들을 읊는 것이. 한국식 인터뷰니 순순히 답했지만, 한국서 이제 출생이 어딘가 하는 것들은 이제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탈북자들이 이해가 됐다.
난 숙명여대 수학과 94학번. 2002년 홍콩법대 인권법석사, 2009년 영국캠브리지대 정치학박사, 옥스포드대 박사후과정 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컨설턴트, 싱가폴국립대 정치학강사를 거쳐, 현재 싱가폴경영대 정치학조교수겸 호주 시드니 로위연구소 이주정책연구실장까지 국제기구, 대학, 연구소에서 이주, 인권, 동아시아 연구를 해왔다. 박사과정 시작이전, 한국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국회에서도 일을 했다.
재미난 질문도 있었다. 살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부분을 말해달라. 바로 떠오르는 3가지 순간이 있었다. 인권위에서 2003년경 작성한 납북자가족 명예보상에 관한 권고문이 나가고 국회에서 법안이 채택되고 통과하면서, 가족대표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을때. 그리고 최근 2014년 ‘동아시아 비정규이민과 인간안보’ 책이 나오고, 아세안에서 기조연설자로 초청을 받았을때. 내 박사논문이 2009년 책으로 나왔을때가 보람있었던 순간이었던거 같다.
요즘은, 어려서 없던 반항기가 언제부턴가 돗아나, 남이 안될것이다, 하지말라는 것을 하고서, 그것이 나중에인정을 받았을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거 같다.
기자가 마지막에 남편이 무얼하는가를 물었다. 난 그게 왜 중요한가 반문했다. 한국인터뷰선 자연스레 하는거라 했다. 독자가 40대이상 한국인이다보니 그렇다 했다. 만일 내 남편이 국회의원, 성공한 기업가, 기술노동자, 연예인, 인권운동가인가에 따라, 한국인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 것일까 궁금했다.
다행히 자녀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난 자녀없이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한국에 가면 당연스레 자녀여부에 대한 질문을 하지만, 호주에 온 이후로 아직까지 한번도 그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한국에선 더 나아가 왜 자녀가 없는지도 물어본다. 이전에 학술학회에 남편 따라온 한국인 사모님은 그 질문에 이어 아이가 생기는 병원치료를 권했다. 또 다른 애가 여럿인 한국인 여자교수는 내가 모성애가 없는것 같다며, 다리가 없는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여자가 교회서 간증하는 비디오는 보내줬다.
이전에 아이가 갖고 싶었을때는 아이를 안은 젊은 부모만 봐도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저렸다. 그렇지만 3-4년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아졌고, 오히려 아이를 갖지 않는 방향으로 정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서 임신가능성도 거의 없겠지만, 아이없이 사는 것이 더 나아보였다. 지구에 인구가 너무 많아 내가 구지 낳지 않아도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부모가 있어도 버려진 아이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잘못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얼마나 살지 모르는 인생, 남편과 오붓이, 그리고 넉넉히, 일하며 여행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다.
최근 인권논의 중에, 존엄하게 사망할 권리, 라는 것이 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권리, 살만큼 살았다고 느끼고 죽고싶을 때 죽을 권리를 말한다. 인생의 절반에 서서, 이 존엄한 사망권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본다. 자식이 없으면 이 권리의 실현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죽음은 본인에게 보다,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도 있으니까.
호주의 어느 과학자 부부가 같은날 본인들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편이 부인에게 주사를 맞히고, 본인은 자신이 고안한 기구를 통해 약을 투여해 편안히 생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성장한 딸이 셋 있었는데, 모두 부모의 의견을 존중했다.
내나이 절반 20세에 지금같은 글을 썼는데, 40세가 되는 생일에 내가 원하는것을 하고 있지 않으면 자살을 하겠다는 말이 있다. 다행히, 지금의 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내나이 두배80세에, 나와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면, 둘이서 손을 잡고 가까운 공기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올거다. 바로 40세 내 생일날과 똑같이. 앞으로 40년 꼭 오늘과 같았으면 좋겠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