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여기저기 살아보기(1): 영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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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영국거주당시 Frontline Club에서 북한의 김정일 사망에 대한 기자회견중]

한국을 떠난지 11년차. 이젠 1년에 한두번씩 주로 일때문에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는 고향에 돌아가도 전혀 내집같지 않고, 길거리를 나다녀도 여행자 기분이다. 2015년 외교부 통계에 의하면, 나같이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국적동포나 재외동포가 7,185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에만 2,586명, 자료를 자세히 보니 조선족을 다 넣어놨고, 자료는 재외동포로 대사관등에 등록한 자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한다. 나같이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 유학생 등 단기체류자를 포함하면 수자는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은 재외한국인(재외동포라는 민족적 개념은 피하고 싶다)은 부모를 따라 해외로 이주했거나, 혼자서 유학등으로 나왔다가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직장을 잡거나 혼인을 해서 머무르는 경우, 혹은 가족동반 이민의 사례이다. 나는 두번째 경우로 영국에서 석박사를 하고 결혼을 한후, 스위스 제네바, 싱가폴, 그리고 지금은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과 직장을 이어가는 경우이다.

재미있는건 영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 한국인 박사과정생들 중에서, 남자들은 한국여자와 결혼해 (혹은 하기위해) 한국으로 죄다 돌아가서 직장을 잡았는데, 여자들을 대부분 영국에서 한국인 아닌 남자, 혹은 재영교포와 결혼해 해외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나도 그 경우고.

지난 11년중, 5년은 영국 (스위스 잠깐), 5년은 싱가폴, 그리고 지난 7-8개월간 호주에서 살았는데, 이쯤에서 이 3개 나라를 훎어보면 어떨까해서 블로그 포스트를 열었다. 이들 나라로 해외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의 젊은 친구들한테 도움이 될까하여.

먼저 영국. 영국은 우울한 날씨로 알려져있지만, 아주 춥거나 아주 덥지 않은 히터도 에어콘도 필요없는 괜찮은 날씨이다. 연중 거의내내 비가오고 축축한 11개월 이후 덥지 않고 시원한 최고의 여름날씨 1개월을 만끽하는 재미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영국의 매력중의 하나는 시니시즘, 즉 비꼬기. 행복한 척해도, 세상이 그리 다 아름답지 않다는 거다. 미국과 가장 다른 문화로 내가 박사를 하기 위해 미국대신 영국을 선택한 이유도 영국식 비판적 사고를 갖기 위한 것이었다. 2000년 초반에 미국에 1년정도 살았는데, 지나친 섹시즘과 컨수머리즘 (소비자주의?), 뭐든 다 사야할것 같은, 자기자랑이 너무 심한 그런 문화가 싫었다. 90년대 중반 유럽배낭여행을 했을때 받은 영국의 분위기가 내 투덜대는 성격과 더 맞았고 그래서 박사과정을 고를때 영국만 봤다.

총5군데 지원을 했고 4군데서 합격통지를 받았는데, 그중 제일 좋은 대학과 장학금을 준다는 두 대학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존경하는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나중에 돌아와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당연 제일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고 해서, 돈도 없는데 그냥 갔다. 가서 3년간 한국서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을 죄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한테 빛까지 지는 바람에 박사과정 내내 집에서 엄청 구박받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배째라고 구박을 받더라도 좋은대학에 간기로한건 잘한 결정인것 같다.

문제는 나같은 서민출신이 (한국에선 요즘 뭐라더나 금수저, 똥수저 그러는거 같은데 난 동수저 정도인거 같다), 물가가 무지 비싼 영국으로 게다가 부자들이나 오는 좋은대학에 오니까 계급차가 너무 느껴지더라는 거다. 캠브리지선 옥스포드랑 마찬가지로 매주에 몇번씩 포멀홀이라는 걸 하는데, 거추장스럽게 검정가운을 걸쳐입고 단체로 밥을 먹는 의식이다. 20-30파운드니까 한국돈으로 4-6만원씩하는 밥을 긴식탁에 앉아 먹기전에 라틴어로 된 기도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각자 자기들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는데, 여기서 이것저것 주워들은게 많긴 했다. 좋은학교는 선생보다 애들이 좋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또 일년에 한번씩 메이볼이라고 해서 드레스랑 뭐랑 엄청 차려입고 100-200파운드씩라는 돈을 내고 파티를 하는데 난 4년내내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우스꽝스럽게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고 바운시카슬 (바람을 넣어 방방 뛰어 놀도록 성처럼 만들어놓은 놀이기계)이나 술잔을 쌓아놓고 마시는 그런 파티는 가고싶지 않았다. 재미삼아 가보자는 맘맞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럴 돈으로 차라리 채러티에 기증하는게 낮겠다 싶었다.

가장 좋았던 캠브리지 기억은 학교 정원서 정원사로 일했던 경험이다. 이얘긴 너무 재밌어서 그당시 시사인 기사로 나가기도 했다 (여기: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1)

영국의 계급문화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경험하니, 아주 깊숙히 자리잡아 있는듯하다. 런던 곳곳에 자리잡은 사설클럽들이 계급문화를 유지해간다. 가입비가 매우 비싸고 조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일단 클럽에 들고나면 여러모로 이득도 많다. 정보와 인맥, 이렇게 간단히 요약할수 있을것같다. 그런데 이런 클럽에서 재외한국인은 몇몇 교포들을 제외하곤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일본인, 대만인들은 꽤 봤고, 중국인들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영국서 만난 재외한국인들은 대부분 런던중심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거나, 뉴몰든이라는 한인타운에 뭉쳐 살았다. 그 사회 안에서도 계급차가 보였다. 대부분의 중산층은 뉴몰든에 살았고, 학식이나 재산이 있는 상류층 재외한국인들은 고급주택가에 영국인들과 어울려 살았다. 대부분 중산층은 한국회사에 다니거나, 영국 기업에, 혹은 개인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인타운도 잘 발달되어 있어서 한국음식, 쇼핑은 문제가 없다.

지난 10년간 영국이 이민제도를 엄격히 재정비하고, 브렉짓 (영국이 유럽에서 나온것) 이후 단기간 경기가 침제될 것으로 예상되니, 앞으로 당분간은 영국으로의 이민이 힘들어 보일수도 있다. 그치만 수년후에 다시 회복할 것으로 본다. 영국이 유럽에서 나왔다고 해서 끝이 난게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유럽인에게 주는 특혜가 사라졌으니 우리같은 한국인에게 오히려 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 또 최근 영국이 호주를 따라하고 싶어하는 이민정책중의 하나가 포인트베이스 기술이민인데, 다시 말해 영국이 원하는 기술이민만을 계산해서 단기이민으로 우선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술이 계속 필요하면 사업장에서 기술이민비자를 연장하고, 계속 원할 경우 영구이민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앞으로 영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이 가진 기술이 영국에서 필요로하는 것인지 신중히 판단하길 바란다.

오늘은 여기까지. 일하러 나가야 하므로. 다음엔 싱가폴에 대해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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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yuwook Oh says:

    안녕하세요, 포스트 잘 읽고 가요, 북한 난민과 해외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처음 포스트를 구독하며 읽고 있는데요, 솔직하게 개인적인 얘기에 해외에서 연구하는 입장에서 많이 공감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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