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여기저기 살아보기(3): 싱가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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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싱가폴을 방문한 Pussy Riot 맴버들과의 간담회 후]

마지막 블로그를 쓴것이 2016년 8월이라 거의 일년만에 후속이야기를 쓰게 되어 스스로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직장을 옮겼고, 도시도 (또) 옮겼다. 이전 포스트를 보니, 충고를 한답시고 지금 직장이 해가 되는 거 같거든 어서 떠나라 했는데, 내 자신은 나를 해치고 있었던 직장을 떠나는데 일년이나 걸렸다. 이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싱가폴에서 한인이주자로 살아보기에 관해 쓰겠다.

싱가폴엔 2011년 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살았다. 가족이민으로 남편을 따라갔다. 영국에서 2009년 박사를 마친후 스위스 무급인턴(1,2편 참조)을 거쳐, 싱가폴 가기 이전까지 옥스포드에서 포닥(박사후과정)과 유엔 컨설턴트일을 동시에 했다. 박사후과정을 하면서도 학교에 남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 한발은 학교에 다른 한발은 국제기구에 담고 있었다. 2009년부터 2011년사이 아마도 족히 50개 가까이 지원서를 썼던거 같은데, 마침 유엔에서 P3 (주니어오피서는 P1에서 시작) 자리가 주어졌다. 문제는 2009년 박사를 따면서 결혼도 했고, 같은 시기 남편이 (매우 안전한) 싱가폴에 직장을 구했고 내 유엔직장은 (매우 위험한) 콩고였다는 것. 게다가 배우자동반이 안되는. 그래도 내가 매우 가고싶어하자, 남편이 제안을 했는데, 가위바위보 한판. 결과는 내가 진것. 잔말 안코 남편을 따라가기로 했다. 가면 뭐든 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과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2011년 2월말 싱가폴에 도착, 남편이 출근하고 없을때 앞으로 난 뭘하며 먹고살아야 하나 생각하다. 일단 싱가폴서 제일 좋은 대학부터 시도해보자 싶어, 학장/연구소장에 이메일을 써 만나자고 했더니 흔쾌히 만나주었다. 당장 3월부터 연구소에 방문연구원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8월부터 정치학과 시간강사로 2과목을 가르쳤다. 1과목당 100-150명 가량의 학생을 대상으로한 대강의였다. 튜토리얼만도 10개, 나혼자 다했다. 대학강의가 처음인지라 난 다들 그렇게 하는건줄 알았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성심성의껏 했다. 한학기가 끝나고 다른강사들과 비교하니, 내가 너무 많이 가르치고 있였다.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다음 학기는 그렇게 부려먹힌걸 역이용해서, 학과장에게 내가 가르치고 싶은걸 가르쳐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그러라 했다. 그래서 싱가폴서 최초로 ‘국제관계와 인권 (Human Rights in International Relations)’을 신설했다.

인권강의를 하면서 솔직히 많이 떨었다. 강의하다가 끌려나가면 어쩌나, 추방당하면 어디로 가나, 남편 직장에도 해가 되면 어찌 하나, 학생들도 무서워서 다 나가버리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특히 6주차 리관유의 아시아가치와 인권을 강의할때, 대강의실을 꼼꼼히 훑어보고 다른 사람이 엿듣르러 오지 않았나 살피기도 했다. 가끔 모르는 얼굴들이 들어와 있기는 했다. 30대 중반의 남자 2명도 첫강의 몇개에 앉아 있다가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통과했다보다 했다. 싱가폴에 살면 이런 이상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북한에 좀 살아봤다는 외국인들이 북한을 떠나서 수기를 내고 그러는게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한학기 강의를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그 강의는 내동료가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싱가폴은 껌을 씹으면 안되는 나라,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깨끗하고 치안이 잘 되어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보통 민주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싱가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싱가폴에 직접 가서 살아보기 이전까지는. 싱가폴에 가서 가장 의미있는 일중의 하나는 그곳 인권운동가들과의 교류였다.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권운동가들이 나름의 내부진화를 통해 담론을 바꿔가며 지난 50년간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가 배운것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올해 초, A History of Human Rights Society in Singapore: 1965-2015 (London: Routledge, 2017) 출간되어 나왔다.

혹자는 내가 북한인권담론으로 박사를 썼다고 하면, 별로 쓸것이 없었겠다며 웃기지도 않는,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만 웃는, 비열한 농담을 한다. 싱가폴인권운동사로 책을 냈다고 하면 또 그런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거 같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그들의 치열한 투쟁, 타협, 희생, 생존을 위한 적응을 연구하고 기록하기 위해, 인권운동가와 나의 학생들 35명이 동원되어 2015년, 싱가폴독립50주년, 일년동안의 작업이 참 보람있었다. 그리고 2016년 싱가폴을 떠나면서 동료들을 위한 나의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다. 싱가폴에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중의 하나로 평생 기억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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