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여기저기 살아보기 (4): 호주 시드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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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호주시드니 한인신문 톱뉴스 기사, “로위 연구원 한국계 여성학자 영입” http://www.topdigital.com.au/node/1541]

 

필자는 싱가폴경영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에서 시드니 로위연구소 이민연구정책실장으로 2016년 1월부터 직장을 옮겼다. 런던에서 싱가폴로 이주한것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개인적인 가족이민이었다.

이쯤에서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박사로서 후배들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결혼은 선택이고, 하게 되면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하되, 본인이 하고싶은 것을 가족의 이름으로 절대 포기하지 말라. 한국에서 모범생으로 잘 자라고 유학온 사람들을 보면, 가족, 민족이라는 테두리안에 머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는데, 내가 함께 공부했던 한국남자박사들은 대부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한국서 자리를 잡은데 반해, 여자박사들은 외국에 남아 외국인과 결혼하여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왜그럴까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더니, 한국의 직장문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가 보기엔 여기에 계급과 가족이라는 이유가 더 깊숙히 있는 거 같다. 다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라 아주 친하지 않고는 잘 터놓지 않는 얘기이지만,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살펴보면, 한국에 특별한 학연/지연이 있어 끌어줄 사람이 없고, 부모가 보수적이지 않아 배우자가 반드시 한국인이 아니어도 되고, 부모가 부유하지 않은 자수성가 스타일들이라 부모에 진 빛이 (거의) 없는 독립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계급이라 한 이유는, 나의 정치적성향 때문인데,  난 한국의 계급사회가 일제시대를 통해 더 굳혀졌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서 금수저, 똥수저 하는게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고 기원이 있는거다. 유학하고 외국생활을 하면서 아주 부자인 사람들도 종종 만나는데, 이들을 보면 나와는 성장과정이 아주 다르구나, 이들에겐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힘들지 않고도, 기회가 주어지는구나, 친구들이 저절로 따르는구나, 도와주는 사람이 많구나, 하고 부러웠던 적이 많다. 마흔이 넘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난 되도록 한국서 학연이 없고 독립적인 후배들을 도우려 한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내도움이 없이도 대체로 혼자서들 잘산다.

내가 다녔던 시드니 로위연구소는 국제문제를 연구하는 호주에서 몇 안되는 씽크탱크의 하나이다. 프랭크 로위라는 호주의 부호가 설립한것인데, 최근은 기업, 정부지원금을 많이 받아 운영하고 있다. 국제안보, 경제, 동아시아, 멜리네시아, 호주여론조사로 팀이 나뉘어 있고, 내가 들어가면서 신설된 이민정책연구실은 호주 이민성에서 백만불을 지원을 받아 2년동안 이민정책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자살을 불러올뻔 했던 최악의 직장이었다.

첫째, 연구소는 학교와 너무나 달랐다. ‘연구’에 대한 이해가 달랐을 뿐더러, 100% 정부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프로젝트라 연구의 독립성이 전혀 없었다. 연구원들 중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얼마되지 않았고, 연구와 출판을 담당하는 상사도 박사학위가 없었다는 것이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호주는 그런가보다 했다.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박사학위가 없다보니, 이론, 기존문헌 분석 이런 것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했다. 반학문적, 반학자적 문화가 팽배했다. 박사학위가 매우 하찮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논문을 써본적이 없는 사람이 연구담당,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이 디지털소장, 사회학/통계를 배워본적 없는 사람이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둘째, 난 싱가폴에서 왔기 때문에 호주에선 학문의 자유를 누릴거란 기대를 하고 있어서 였는지, 뜻밖의 언론통제에 당황스러웠다. 호주 이민정책, 특히 난민정책은 비난을 하지 않기가 힘든 정책분야이다.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것, 나의 저작물을 과도하게 홍보하지 말것 등을 지시받았다.

셋째, 난 학자로서 비판적 시각에서 난민, 이민, 외교정책 일반을 분석했지만, 연구나 분석에 대한 평가보다, 나의 언어, 태도 등을 문제삼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언어표현에 대한 지적을 들으면 굉장히 위축된다. 문법에 대한 지적이 아닌 표현이나 태도, 표현, 억양에 대한 지적이었다. 두명의 호주동료에게 호주사람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너무 직설적이라는 거였다. 참고로 나는 이메일은 차갑게 쓰는 편이다. 외국에 10여년간 살면서, 너무 상냥하면 가벼운 동양여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말하면서 웃지 않고 말을 끊어야 할때 끊어버리는 엔티소셜 습관, 할말만 간단히 하는 이메일 습관이 언제부턴가 생겨버렸다. 어쨌건, 영국, 스위스, 싱가폴에 살면서 단 한번도 나의 이러한 언어나 태도에 대한 지적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다양성을 존중받았는데, 호주 시드니에 와서 내가 하는 연구보다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넷째, 전문성이 내부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나는 한국여성으로 캠브리지 박사학위가 있고, 10년이 넘게 직장경험이 있으며, 백만불짜리 이민정책연구를 하는 40대의 선임연구원이자 실장이었다. 그런데 전략회의엔 한번도 초대되지 않았다. 박사학위가 없고, 직장경험이 5년 미만인 30대 초반의 백인남자 실장은 전략회의에 초대되어 간다. 나는 워크샵 준비를 위해 폴더에 자료와 볼펜을 챙겨넣고 있는데, 주니어 백인남자 동료들은 전문분야도 아닌 문제에 티비인터뷰를 하고 있고, 트위터 팔로워가 몇천명이다. 같은 실장이라도 누구는 전력회의에 가고 안가고에 따라, 내부에서 동료들 사이에 격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난 싱가폴에서 온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억양있는 한국여자인거다. 이런게 밖에서 말하는 호주의 여성, 인종차별인가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그런 자괴감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연구소내 업적을 판단하는 기준이, 독자적인 연구보다는 미디어출연, 신문사설수, 심지어 트위터팔로워수였다. 난 트위터를 잘 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런 것들이 연구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내부의 기준을 따르려면 억지로 웃으며 상냥한척 하며 해야했다. 18개월 계약을 끝내고 연구소를 나갈때, 조용히 나가고 싶었다. 차와 비스킷을 두고 고별인사 이런것은 정말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하고 싶지 않다고 상사에게 조용히 말을 했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나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았다. 호주사람처럼 감사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나가야했다. 그렇게 끝까지 해주고 나왔다.

다섯째, 마흔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전혀 살아보지 않은 나라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나의 전문성을 모르거나 키워줄 생각이 전혀 없는 직장에서, 나이 마흔에 맨땅에 해딩하기란 너무 벅찼다. 내게 익숙한 환경, 나의 전문성을 알고 인정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의 언어표현, 태도, 인종, 성별로 차별받지 않을 곳으로 빨리 나가야 했다. 그러나 나갈 곳이 정해지기까진 웃으면서 참고견뎌야 했다. 그러기까지 1년이 결렸다.

로위연구소에 18개월간 일하면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내남편이다. 내가 너무 힘들고 자존심이 다 무너지고, 한때 죽고싶기까지 했을때, 곁에서 다 들어주고 위로해준 사람이다. 내 우울증이 전염되어 본인도 참 괴로웠을거다. 미안해요, 여보.

2 Comments Add yours

  1. Taeyong Chang says:

    남편의 직장에 따라 이리 저리 옮기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게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제 아내도 원래 생활권인 오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저랑 결혼하고 연고가 없는 대전에 와서 새로 직장을 구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곧 싱가폴로 포닥을 가는데, 아내 또한 그나마 적응한 대전생활을 접고 또 싱가폴로 저를 따라갈 예정입니다.
    대전에 와서 적응해준것만으로 고마운데, 또 싱가폴로 같이가려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영국편부터 재밌게 읽었습니다. 읽다보니 제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ㅎㅎ
    코로나 조심하시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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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y Song says: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쉽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나중엔 남편이 나를 따라오게 되더라구요. 어디를 가더라도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면 뭘하나요? 가족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더라구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더 그렇죠. 가장 소중한건 가족과 건강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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